옷은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사람의 몸은 대체로 좌우가 같으니 옷도 좌우가 같게 만드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몸의 치수가 다양하니 옷도 치수를 나누는 편이 합리적이다. 한복은 두 가지를 다 하지 않았다. 좌우가 어긋나 있고, 치수를 잘게 나누지 않는다. 이 글은 비대칭과 가변성이라는 두 특징을 통해, 형식을 정해 두되 그 안을 비워 두는 방식이 옷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 글의 성격과 한계
이 글은 경영학의 관점에서 복식을 읽는 시도다. 필자는 복식사나 의류학의 전문가가 아니며, 해당 분야가 축적해 온 논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옷의 형태에는 기후, 직물의 성질, 직조와 재단 기술, 신분 제도처럼 문화적 성향과 무관한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연결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반증 가능한 해석이며, 같은 대상을 두고 다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좌우가 맞지 않는다
한복을 펼쳐 놓으면 좌우가 겹쳐지지 않는다. 저고리의 여밈이 한쪽으로 쏠리고, 깃과 섶의 배치가 어긋난다.
여밈이 있는 옷은 어느 문화에나 있다. 일본의 기모노도, 중국의 전통 복식도 앞을 여민다. 그러니 비대칭 자체가 한복만의 것은 아니다. 복식을 연구하는 이들이 지적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다. 다른 복식에서 여밈이 하나의 요소로 남는 데 비해, 한복에서는 그 어긋남이 옷 전체의 인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비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도의 차이를 재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시대와 계층에 따라 형태의 폭도 크다. 이 글에서는 비교의 결론보다 비대칭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초점을 둔다.

펼쳐 놓아서는 알 수 없다
비대칭 구조에는 실질적인 결과가 따른다. 한복은 펼쳐 놓았을 때의 모습과 입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좌우가 맞는 옷은 걸어 두어도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 한복은 그렇지 않다. 여미는 정도, 고름을 매는 위치와 길이, 치마의 여유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옷이 다르게 보인다.
입는 사람이 마지막 형태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식을 살짝 벗어나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고름의 색을 달리하거나 끝동에 다른 감을 대는 방식이다. 옷의 구조 자체는 정해져 있는데, 그 구조 위에서 한 곳이 어긋난다. 균형을 지키는 대신 한 곳을 강조해 아름다움을 만드는 방식이다.
몸에 맞추지 않고 몸을 품는다
두 번째 특징은 가변성이다. 복식 연구에서는 이를 가변적 공간성이나 무정형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기성복은 치수를 잘게 나눈다. 몸에 맞는 치수를 고르고, 몸이 변하면 옷을 바꾼다. 옷이 기준이고 몸이 거기에 맞춘다.
한복은 반대다. 치수의 구분이 성기고, 폭이 넉넉하며, 끈으로 조절한다. 몸이 조금 변해도 같은 옷을 계속 입을 수 있다. 옷이 몸을 품는 구조다.
이 여유는 화려한 재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한 형태에서 나온다. 직선으로 재단하고 넉넉하게 남겨 두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폭이 생긴다. 정교하게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몸을 받아들인다.
한옥과 같은 원리
이 구조는 한옥에서 이미 본 것이다.
마루와 마당은 용도를 미리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기능을 감당했다. 한복은 치수를 미리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몸을 감당한다. 대상은 다르지만 원리가 같다. 미리 규정하지 않은 여백이 나중의 유연성이 된다.
여기서 하나의 표현이 나온다. 일관적 비일관성이다. 겉으로는 정해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정해 두지 않는다는 원칙 자체는 일관되게 유지된다는 뜻이다.
이 특성의 그림자
같은 뿌리에서 다른 것도 자란다.
대충이 유연성의 다른 이름이 될 때가 있다. 치수를 잘게 나누지 않은 것은 설계상의 선택이지만, 기준을 세우지 않는 태도가 습관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밀해야 할 곳에서까지 넉넉하게 두는 것은 유연성이 아니라 부정확이다.
형식이 없으면 파격도 없다. 고름의 색이 파격이 되는 이유는 나머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전부가 자유로우면 어느 것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규칙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창의도 사라진다.
모순 경영으로
이 구조는 자율과 통제의 모순과 만난다. 세 가지를 가져올 수 있다.
첫째, 틀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한복에도 구조가 있다. 저고리와 치마의 형태, 여미는 방향, 고름의 위치는 정해져 있다. 그 위에서 개인의 선택이 작동한다. 자율을 늘린다는 것이 규칙을 없앤다는 뜻이 아닌 것과 같다.
둘째, 어디를 비워 둘지 정하는 것이 설계다. 한복은 아무 데나 여유를 둔 것이 아니다. 폭과 길이에 여유를 두고 여미는 방식에 선택을 남겼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영역을 규정하고 어느 영역을 열어 둘지 정하는 것이 자율 설계의 실체이며, 이 판단이 없으면 자율은 방임이 된다.
셋째, 유연성은 목적이 있을 때만 방향을 갖는다. 같은 옷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입히는 것을 두고 줏대가 없다고 볼 수도 있고 적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둘을 가르는 것은 무엇을 위한 변용인가다. 조직에서 이 기준이 목적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상반된 활동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되고, 목적 없이 전략만 있으면 그 활동들은 서로 충돌한다.
정리
한복은 좌우를 맞추지 않았고 치수를 잘게 나누지 않았다. 대신 정해진 구조 위에 여백을 남겼고, 그 여백을 입는 사람이 채운다.
이 방식이 유연성인지 부정확인지는 옷이 말해 주지 않는다.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비워 둘지 구분되어 있으면 유연성이고, 그 구분이 없으면 그냥 대충이다. 한복에서 가져올 것이 있다면 여백 자체가 아니라 여백의 위치를 정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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