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이 실패한 이유는 정보의 부재가 아니다. 코닥은 디지털 시대가 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문제는 그 정보를 “안정과 변화가 동시에 작동해야 할 모순”으로 인식하지 않고 “필름이냐 디지털이냐”의 선택으로 읽었다는 데 있다. 선택의 관점에서 디지털은 필름의 적이었고, 적을 누르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이것이 모순경영의 첫 번째 실패 유형인 선택 함정이다.
같은 출발점 — 신호는 코닥이 더 빨랐다
IBM과 코닥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성격의 신호를 받았다. 오랫동안 성공해 온 핵심 사업이 있고, 그 사업의 논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는 신호였다.
신호의 선명도만 놓고 보면 코닥이 유리했다. 디지털 이미징의 가능성을 내부에서 먼저 확인한 쪽이 코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결과가 갈렸다. 모순경영의 세 단계로 두 회사를 나란히 놓으면, 갈림길이 어디였는지가 단계마다 드러난다.

감지 — 인식하고도 눌렀다
코닥의 감지 실패는 특이하다. 신호를 못 본 것이 아니라, 보고도 눌렀다.
이유는 자기잠식(cannibalization) 우려였다. 디지털이 성장하면 필름 매출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틀린 것은 그 사실을 다루는 프레임이었다. 두 사업을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 순간, 디지털의 성장은 곧 필름의 손실로만 계산된다. 그 계산에서 이기는 쪽은 언제나 이미 수익을 내고 있는 쪽이다.
IBM은 같은 종류의 신호를 다르게 읽었다. 메인프레임 고객의 안정과 새 컴퓨팅 시대의 변화가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고 보았다. 두 요구가 하나의 저울이 아니라 두 개의 축이 되자, 한쪽의 성장이 다른 쪽의 손실로 자동 계산되지 않았다. 감지는 신호의 양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라는 명제가 이 대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설계 — 부서는 만들었지만 위치가 달랐다
여기가 이 사례에서 가장 오해되기 쉬운 지점이다. 코닥도 디지털 부서를 만들었다. 표면적으로는 IBM의 EBO와 비슷한 조직 단위가 존재했다.
그러나 코닥의 디지털 부서는 분리되지 않았다. 자원 결정도, 평가 기준도, 의사결정 권한도 필름 부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같은 평가표 안에서 신사업과 기존 사업이 경쟁하는 구조에서 신사업은 성장할 수 없다. 수익성으로 평가하면 필름이 이기고, 성장률로 평가하면 디지털이 이긴다. 어느 잣대를 쓰느냐가 곧 결론이며, 잣대를 쥔 쪽은 기존 사업이었다.
IBM이 Horizon 1·2·3의 평가 기준 이중화와 CEO 직속 보고라인으로 해결했던 바로 그 문제를, 코닥은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조직을 만드는 것과 조직의 위치를 설계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균형 — 고정된 추
균형 단계에서 두 회사의 차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IBM에서 변화와 안정의 비중은 시기별로 재조정됐다. 위기 국면에는 변화 쪽으로 강하게 쏠렸고, 이후에는 변화를 제도로 안정화했으며, 그 신사업이 안정 사업이 되자 또 다른 변화의 축을 세웠다.
코닥에서 추는 안정 쪽으로 고정됐다. 변화는 언제나 부차적인 자리에 있었고, 그 자리에서는 어떤 성과도 기존 사업의 성과와 비교될 때 작아 보였다. 균형이 동적 조율이 아니라 정적 상태가 되면, 그 상태를 유지하는 힘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진다.
정합 모델로 보면 — 부분적 변화의 함정
정합 모델로 보면 코닥의 실패는 더 구조적으로 읽힌다. 코닥에서 바뀐 것은 전략 선언 정도였다. 평가 제도도, 조직 문화도, 사람도 그대로였다. 일곱 요소 중 하나만 움직이고 나머지 여섯이 제자리에 있으면, 움직인 하나는 나머지 여섯에 의해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
IBM에서는 일곱 요소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재정렬됐다. 이 차이가 부분적 변화의 함정이다. 새로운 전략을 선언하는 일은 하루면 되지만, 그 전략이 작동하려면 평가와 문화와 사람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구조 하나만 움직였을 때 같은 일이 일어난 사례가 자포스다.
이 함정을 피하려면
선택 함정은 무능이나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각 단계의 판단이 국지적으로는 모두 합리적이었다는 점이 이 함정의 무서운 점이다. 자기잠식을 우려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수익성 높은 사업에 자원을 더 배분하는 것도 합리적이며,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공정하게 비교하는 것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합리적 판단들이 모두 “둘 중 하나”라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해 두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모순인 것은 아니다. 자원이 정말로 하나뿐이고 두 선택지가 양립할 수 없다면 그것은 딜레마이며, 딜레마는 선택해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 모순은 다르다. 두 요구가 서로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필요하고, 어느 한쪽을 없애면 다른 한쪽도 약해지는 관계다. 코닥의 오류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모순을 딜레마로 잘못 분류한 것이다. 디지털이 성장해도 필름 고객은 한동안 남아 있었고, 필름이 만드는 현금은 디지털 전환의 재원이 될 수 있었다. 두 축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는데, 조직은 그것을 제로섬으로 읽었다. 코닥은 모순을 딜레마로 잘못 분류했고, 폭스바겐은 모순임을 정확히 알고도 감췄다. 감지의 실패와 의지의 실패는 다르다.
이 오분류는 되돌리기 어렵다. 딜레마로 분류하는 순간 조직은 승자를 정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고, 두 축이 공존할 구조를 설계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설계가 없으면 시간이 갈수록 승자의 논리만 강화된다.
조직이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질문은 세 가지다.
- 지금 논의되는 사안이 “A냐 B냐”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A와 B가 동시에 필요한 것은 아닌지 먼저 물어야 한다.
- 신사업과 기존 사업이 같은 평가표를 쓰고 있는가? 같은 표를 쓰는 한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 전략만 바뀌었는가, 아니면 평가·문화·사람도 함께 바뀌었는가?
모순을 모순으로 보지 못하는 조직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기술을 자기 손으로 봉인할 수 있다. 코닥이 남긴 교훈은 그것이다.
→ 모순경영이란 무엇인가 · 변화↔안정의 모순 · 같은 모순을 다르게 다룬 한국 사례: 삼성전자
참고: Munir, K. A. (2012, February 26). The demise of Kodak: Five reasons. The Wall Street Journal. / Anthony, S. D. (2016, July 15). Kodak’s downfall wasn’t about technology. Harvard Business 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