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원가우위라는 잘 작동하던 정렬 위에 디자인이라는 두 번째 축을 세웠다. 핵심은 디자인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조직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연구개발 부서 아래의 한 팀이던 디자인을 2001년 CEO 직속 독립 조직으로 올리자, 디자인과 생산은 대등해졌고 충돌이 늘었다. 삼성전자는 그 충돌을 제거하지 않았다. 모순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표면화한 것이며, 표면화된 모순이 보르도 TV를 만들었다.
삼성전자 변화와 안정 무엇이 모순이었나?
1990년대 초 삼성전자는 잘 정렬된 조직이었다. 리더십은 제조 효율에, 목적은 “좋은 품질을 낮은 비용으로”에, 핵심 업무는 공정 효율화에 맞춰져 있었고, 구조는 수직적이었으며 구성원들은 그 규율 안에서 탁월하게 움직였다.
문제는 정렬의 부재가 아니라 정렬의 방향이었다. 동남아에서 통하던 정렬이 선진국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잘 작동하는 정렬도 맥락이 바뀌면 족쇄가 된다. 한때 작동하던 제도를 맥락이 바뀐 뒤에도 유지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GE가 보여 준다. 그렇다고 제조 역량을 버리고 다른 회사가 될 수도 없었다. 안정의 축을 유지하면서 차별화라는 변화의 축을 새로 세워야 하는 상황, 이것이 변화↔안정의 모순이다.
감지 — 신호는 늘 있었다, 해석이 바뀌었다
선진국 시장에서 삼성 제품이 외면받는다는 신호는 1993년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판매 데이터와 시장 보고서는 그전부터 있었다. 바뀐 것은 신호가 아니라 신호를 읽는 해석이었다. 후발 주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관점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관점으로 이동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 해석 전환을 조직 전체에 알리는 시작점이었다.
주목할 것은 감지의 대상이다. 감지된 것은 판매 부진이 아니라 모순의 도래였다. 1993년 “디자인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수가 될 것”이라는 말은 제조를 버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제조 옆에 새로운 축을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설계 — 모순을 드러내는 구조

1990년대 대부분의 기업에서 디자인은 연구개발 부서 아래의 한 팀이었다. 이 구조에서는 개발 부서의 우선순위인 상품화 가능성과 가성비가 먼저 작동하고 디자인은 나중에 작동한다. 그리고 이 구조에서는 디자인과 생산 사이의 모순이 표면화되지 않는다.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위계가 정리해 버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다른 선택을 했다.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포하고 디자인 철학을 제정했으며, 2001년에는 디자인경영센터를 CEO 직속 독립 조직으로 재편했다. CEO 직속이라는 위치는 상징이 아니라 협상력의 문제다. 디자인 부서가 개발·생산 부서와 대등한 자리에서 논의할 권한을 가졌다는 뜻이다.
두 축이 대등해지면 둘은 충돌한다. 갈등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 갈등은 비용이 아니라 신호다. 두 축이 각자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고, 이제 시너지를 만드는 단계로 이동했다는 신호다. 삼성전자는 구조 변경에서 멈추지 않았다. 디자인 사고의 전사적 확산, 디자이너·엔지니어·마케터의 협업 체계, 인류학자와 음악가까지 포함하는 채용, 글로벌 디자인 연구소의 확장, 디자인 철학의 주기적 재정의까지 일곱 요소가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재정렬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균형 — 충돌이 만든 제품, 그리고 끝나지 않는 조정
설계가 작동했다는 증거는 제품으로 나타났다. 2006년 4월 출시된 보르도 TV는 이 충돌과 협업의 산물이다. 인류학적 관찰에서 출발해 “TV는 꺼져 있는 시간이 더 길다, 따라서 가구다”라는 재정의에 도달했고, 그 재정의를 실현하려고 스피커를 화면 옆에서 아래로 옮겼다. 음질을 중시하는 개발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고 실제로 갈등이 있었다. 유럽 시장 실험이라는 우회로를 거쳐 합의가 만들어졌다. 보르도 TV는 출시 6개월 만에 100만 대를 넘겼고, 삼성전자는 그해 처음으로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 시장 1위에 올랐다. 이 1위는 2024년까지 19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균형이 동적이라는 것은 세 장면에서 확인된다.
첫째, 원가우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차별화로 전환한 뒤에도 생산·제조·물류에는 원가우위의 논리가 그대로 살아 있고, 그것이 이들 부서의 성과를 만든다. 차별화의 논리로 움직이는 부서와 효율의 논리로 움직이는 부서 사이의 긴장은 지금도 있으며, 경영진의 일은 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하는 것이다.
둘째, 균형점은 계속 이동했다. 1993년의 선언은 1996년의 디자인 원년으로, 2001년의 조직 개편으로, 2005년 밀라노에서의 “디자인 경쟁력은 아직 1.5류”라는 재점화로, 이후 디자인 철학의 개정으로 이어졌다.
셋째, 흐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변화의 축이었던 디자인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당연한 것이 되면서 중요성이 잊힐 수 있다. 실제로 디자인 조직의 위상이 약화되었다는 우려가 제기된 시기가 있었다. 2025년 펩시코 최고디자인책임자 출신 마우로 포르치니를 삼성전자 최초의 외국인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 영입한 것은 균형추를 다시 변화 쪽으로 옮기는 조치로 읽을 수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추는 멈추지 않는다.
정합 모델로 보면
디자인 경영은 전략 하나의 변화가 아니라 정합 모델 일곱 요소 전체의 재정렬이었다. 목적은 기술 중심에서 브랜드 중심으로, 전략은 원가우위에서 디자인 차별화로, 구조는 디자인 조직의 독립과 CEO 직속 보고로, 문화는 부서 간 협업과 실패 허용으로, 사람은 디자인 사고의 내재화로 움직였다. 초기에는 엔지니어 중심 조직에서 디자인을 강조하는 데 대한 내부 저항이 있었고, 보르도 TV 같은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신뢰가 형성됐다.
이 사례의 그림자
첫째, 이 변화는 철저히 톱다운이었다. 모순을 표면화하고 디자인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변화가 회장 개인의 감지와 명령으로 시작되고 추진됐다. 이는 속도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취약성도 만들었다. 리더 개인의 해석에 조직 전체가 의존하는 구조는, 그 해석이 틀렸을 때나 리더가 부재할 때 위험해진다. 변화와 안정의 모순은 다뤘지만, 자율과 통제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의 삼성전자는 통제 축에 깊이 기울어져 있었다. 통제에 기대지 않고 같은 모순을 다룬 설계는 마이다스아이티에서 볼 수 있다.
둘째, 재현 가능성의 문제다. CEO 직속 독립 조직이라는 설계는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후원이 전제될 때만 작동한다. 그런 후원을 동원할 수 없는 조직에게 이 사례의 교훈이 “회장의 결단을 기다리라”가 될 수는 없다. 이전 가능한 것은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설계의 원리다. 리더 개인에 대한 의존을 구조로 끊어 낸 사례가 유한양행이다.
남는 질문
삼성전자는 모순을 드러내 조직을 살렸다. IBM이 평가 기준을 나누어 모순을 관리했다면, 삼성전자는 조직의 위계를 바꾸어 모순을 표면화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두 축이 각자의 논리로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 조직에서, 새로운 관점을 대표하는 부서는 기존 부서와 대등한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위계가 이미 정리해 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