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모순은 창업자의 신념에 맡겨지지 않았다. 지배구조에 심어졌다. 주요 주주가 공익법인인 회사에서 이익의 사회 환원은 경영진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구조에 따른 자연스러운 절차가 된다. 파타고니아가 2022년 소유권 이전으로 도달한 지점에, 유한양행은 반세기 앞서 도착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100년 전체가 아니라, 창업자 유일한이 1926년부터 1971년까지 만든 설계와 그 설계가 창업자 사후 반세기 넘게 작동해 온 궤적이다.
유한양행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모순은 무엇이었나
1926년의 조선에서 이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다. 유일한은 미국에서 식품 회사 라초이를 공동 창업해 이미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가 귀국해 제약업을 창업한 이유에는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회적 목적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자선 단체가 아니라 영리 기업을 선택했다.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추구이지만, 그것은 성실한 기업 활동의 대가로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성과 중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것이 사회↔재무 성과의 모순이다.
선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사례의 핵심은 그 선언이 세 번의 결정으로 실행되었다는 데 있다.
감지 — 선의가 사람과 함께 죽지 않는 법
유일한의 감지는 두 겹이다.
첫 번째는 창업의 감지다. 식민지 조선의 보건 상태는 열악했고, 병은 흔하고 약은 비싸며 유통은 외국 자본이 장악한 시장이었다. 창업은 사회적 필요이자 사업 기회였다. 여기까지는 많은 창업자가 공감하는 지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다. 그는 선의가 개인과 함께 소멸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업자가 두 성과를 함께 추구해도, 그 균형이 창업자 개인의 신념에만 머물러 있으면 승계와 함께 무너질 수 있다. 혈연 승계의 차단과 재산의 공익 귀속은 이 감지에 대한 실행으로 읽힌다. 모순의 균형을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구조에 맡긴 것이다.
설계 — 세 번의 결정

첫째, 소유를 나누었다. 1936년 개인 기업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창업자가 자신의 지분을 직원들에게 직접 나누어 준 방식으로, 현대적 ESOP와 제도적 구조는 다르지만 직원도 기업의 주인이라는 철학을 이른 시기에 실천한 사례다. 1962년에는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했다.
둘째,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다. 1969년 유일한은 부사장까지 지낸 장남 대신 평사원 출신의 조권순 전무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당대의 관행인 장남 승계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그는 그 고리를 끊었다. 이후 역대 대표이사는 모두 내부 공채 출신 전문경영인이며, 임직원 가운데 창업자의 친인척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지배구조에서 공익의 영향력을 고정했다. 1970년 보유 주식을 공익 신탁기금에 출연했고, 1971년 유언장에서는 손녀에게 학자금 1만 달러, 딸에게 묘소 인근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라는 조건만 남긴 채 나머지 전 재산을 공익 법인에 귀속시켰다. 1991년에는 딸 유재라가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전 재산을 다시 유한재단에 기부해 2대에 걸친 환원이 이루어졌다.
세 결정이 만든 것은 하나다. 재무적 성과가 커질수록 사회적 성과가 커지는 연결을, 개인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지배구조에 반영한 것이다. 같은 문제를 아직 구조로 옮기는 중인 사례가 마이다스아이티다. 회사가 이익을 내고 배당하면 그 배당이 장학·교육·복지 사업의 재원이 된다.
주목할 것은 이 설계가 재무적 성과를 약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업원지주제와 기업공개는 구성원과 시장의 감시·동기 부여 장치이기도 하다. 성실 납세와 정경유착 거부 원칙은 단기적으로 비용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규제 리스크와 평판 리스크를 낮추는 안전판으로 작동했다. 두 축이 각자의 논리로 온전히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모순의 한쪽을 죽여 긴장을 없애는 방식과 구별된다.
균형 — 창업자 없는 55년이라는 시험
설계의 진짜 시험은 1971년 이후 시작됐다. 결과를 요약하면 구조는 대체로 견고했다. 전문경영인 승계 원칙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고, 재단과 학원의 주주 구조도 유지되고 있다. 재무 축에서는 국내 제약업계 선두 기업의 지위를 지켜 왔고, 2018년 얀센에 기술 수출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2024년 8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면서 2025년 매출 2조 원을 넘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 가지 통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의 약점으로 흔히 지목되는 단기 성과 압력은 이 사례에서 다르게 읽어야 한다. 임기가 유한한 경영자가 십수 년짜리 신약 개발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는 일반론은, 전문경영인의 이동이 잦고 재계약 압력이 높을 때 성립한다. 유한양행은 개인의 임기는 제한하되 승계를 내부 출신으로 고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넘어섰다. 렉라자가 후보물질 도입에서 FDA 승인까지 복수의 최고경영자 임기를 거친 것이 그 증거다.
다만 균형이 자동으로 유지된 것은 아니며, 긴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첫째, 분배와 재투자의 긴장이다. 재단과 학원은 배당을 받아야 공익사업의 재원을 확보한다. 반면 신약 개발이라는 재무 축의 미래는 이익의 사내 유보와 장기 재투자를 요구한다. 이익이 충분할 때 두 축은 잘 운영되지만, 이익이 정체되면 같은 재원을 두고 경합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둘째, 원칙과 진화의 긴장이다. 2024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유한양행은 28년 만에 회장 직제를 신설했고, 이를 두고 전문경영인 체제의 자연스러운 진화인지 원칙의 변형인지 논란이 있었다. 결말이 어느 쪽이든, 그것이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회사에서 지배구조가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사례의 그림자
첫째, 신화화의 위험이다. 유일한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히며, 그를 둘러싼 일화 중 일부는 후대에 미화되거나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독자가 이 사례를 위인전으로 읽는 순간 이전 가능한 교훈은 줄어든다. 이 사례가 말해 주는 것은 개인의 위대함만이 아니라 모순에 대처하는 구조적 대응이다.
둘째, 이 지배구조가 모든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익법인 대주주 구조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재무적 탁월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유한양행의 수익성 지표는 업계 최상위가 아니며, 렉라자 이전 수십 년간 이 회사는 안정적이되 혁신 속도가 빠른 기업으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사회적 성과를 고정한 대가로 대규모 인수합병이나 고위험 투자에 보수적이 되는 등 재무적 활동이 제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설계는 모순 관리의 한 방식이지 우월한 방식이 아니다.
셋째, 재현 가능성의 문제다. 창업자가 소유권을 스스로 사회에 귀속시키는 결정은 극히 드물고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이전 가능한 것은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설계의 원리다. 지배구조를 바꿀 수 없는 조직이라도, 사회적 성과가 평가와 보상 체계에 구조적으로 연결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부분 적용은 가능하다. 협업을 평가 항목으로 강제하지 않고 협업해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마이크로소프트의 방식이 발상의 참고가 된다.
남는 질문
한 가지 유보를 덧붙인다. 유일한은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인물이다. 그의 가치 융합을 한국성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는 미국에서 익힌 제도(주식회사, 기업공개, 재단, 전문경영)를 조선에서 물려받은 가치(도리, 사회책임)와 융합해 다른 설계를 만들었다. 한국 문화 내부의 융합이 아니라 두 문화 사이의 융합에 가깝다. 이 사례에서 한국성이 작동했다면 창업자 개인보다는 그 설계를 받아들이고 유지해 온 조직 쪽에서 찾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삼성전자가 리더의 결단으로 모순을 표면화한 사례라면, 유한양행은 리더의 부재를 견디도록 균형을 구조화한 사례다. 창업자 없는 55년 동안 구조는 대체로 견뎠으나, 균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 조직에서 두 성과의 관계는 무엇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가? 리더의 의지인가, 아니면 리더가 바뀌어도 남을 제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