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안의 강한 주체성

한국인은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하다. 동시에 그 집단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익숙하다. 두 성향은 보통 상충된다고 여겨진다. 집단이 강해지면 개인은 묻히고, 개인이 두드러지면 집단은 느슨해진다. 한국인의 경우 두 성향이 함께 높게 나타난다. 집단에 속하면서 그 집단에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구조다. 이 특성은 한국성의 네 가지 축 가운데 하나이며, 조직의 층위에서는 경쟁과 협업의 모순과 만난다.

지표와 관찰이 어긋나는 지점

호프스테더의 국가 간 문화 연구에서 한국은 집단주의가 강한 쪽으로 분류됐다. 1991년 비교에서 미국이 개인주의 최상위였던 반면 한국은 53개국 중 43위였다.

그런데 이 지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찰이 계속 따라붙는다. 한국인이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한다는 것, 조직 안에서 자기 자리를 끊임없이 찾는다는 것이다. 허태균은 한국인을 집단주의적이면서 주체성이 높은 집단으로 설명했고, 구본형은 이를 우리 속의 나라는 표현으로 정리했다.1

지표와 관찰의 불일치 자체가 이 특성의 실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하나의 축으로 놓고 측정하면, 양쪽이 모두 높은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그 축 위에서 정확히 측정되지 않는 사례에 가깝다.

한 가지 단서를 달아 둔다. 호프스테더의 원자료는 1970년대 조사에 기반하며, 이후 한국의 개인주의 지표가 상승했다는 후속 연구들이 있다. 이 글에서 그 순위를 인용하는 것은 현재 상태의 근거가 아니라, 단일 축 측정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영향을 주는 자기, 영향을 받는 자기

문화심리학자 이누미야 요시유키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자기 개념에서 찾았다.2 한국인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일본인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수용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주체성 자기 개념과 대상성 자기 개념으로 구분했다.

그가 든 예는 버스 운전사다. 일본에서는 지정된 정류장이 아닌 곳에 서는 일이 드물다. 규칙이 정해져 있고 개인은 그 규칙을 따르는 쪽이다. 한국에서는 뛰어오는 승객을 보고, 혹은 내릴 곳을 지나친 승객의 요청을 받고 정류장이 아닌 곳에 서는 일이 드물지 않다.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나온 두 행동이지만 전제가 다르다. 한쪽은 규칙이 개인을 규정하고, 다른 쪽은 개인이 상황에 개입한다. 어느 쪽이 낫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규칙의 예측 가능성은 일본식 자기 개념의 강점이고, 상황 대응의 유연성은 한국식 자기 개념의 강점이다. 각각이 잘 작동하는 조건이 다를 뿐이다.

판소리라는 증거

이 성향이 가장 선명하게 남은 예술 형식이 판소리다.

대부분의 음악 장르에서 숙련은 이상적인 소리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판소리의 득음은 반대다. 한 명창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다른 소리꾼과 구별되는 소리를 낼 수 있어야 명창으로 인정받는다.

유파가 개인의 이름을 따서 갈라져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해진 해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해석이 굳어져 하나의 계보가 된다. 서편제와 동편제처럼 지역에 따라 기교와 절제의 방향이 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판소리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소리꾼과 고수가 합을 이루고, 청중의 호응이 있어야 성립한다. 개성이 극대화되는 형식인데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 형식이라는 점이 이 장르의 구조다. 집단 안의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 형식으로 존재했다는 뜻이다.

경쟁과 협업의 모순과 만나는 지점

경쟁과 협업의 모순에서 이 특성은 양쪽 극에 동시에 대응한다.

같이 가자는 정서와 앞서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은, 협업을 위해 개인의 동기를 죽일 필요도 없고 경쟁을 위해 공동체적 유대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감각이 이미 문화 안에 있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택 랭킹을 폐지한 뒤 협업의 감각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개인 간 상대평가가 오래 작동한 조직에서는 협력이 손해가 되기 때문에, 제도를 없앤 뒤에도 행동은 한동안 바뀌지 않았다. 한국 조직은 그 감각의 일부를 출발점에서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은 우위가 아니라 시작점의 차이다. 소질이 있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다르다.

이 특성의 그림자

같은 뿌리에서 다른 것도 자란다. 그리고 이 특성의 그림자는 다른 세 특성보다 크다.

주체성이 눈치로 대체된다. 상사의 의도를 먼저 읽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것도 주체적인 판단이다. 다만 그 판단이 향하는 곳이 조직의 목적이 아니라 상급자의 선호일 때, 주체성은 조직의 자원이 아니라 개인의 생존 기술이 된다. 형식적인 보고와 회의, 사라지지 않는 야근이 이 구조에서 나온다.

일사불란함이 소수의 목소리를 지운다. 결정되면 하나가 되어 달리는 실행력은 추격 전략에서 강력했다. 그 과정에서 개성과 소수 의견이 밀려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속도를 위해 치른 비용이었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국면에서는 같은 방식이 손실이 된다.

주체성이 내부로 향하면 소모가 된다. 앞서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조직 밖의 경쟁이 아니라 조직 안의 서열로 향하면, 협업의 자원이 그대로 갈등의 연료가 된다. 성과가 아니라 위치를 두고 경쟁하는 조직에서 이 특성은 가장 나쁘게 발현된다.

가족 같은 회사가 경계를 지운다. 강한 소속감은 연대의 원천이지만, 가족이라는 비유는 계약 관계에서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근거로도 쓰였다. 소속감의 강도와 관계의 건강함은 다른 문제다.

조건으로 전환하기

첫째, 자율과 자유를 구분한다. 자유는 얽매이지 않는 상태이고, 자율은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개인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율이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자율은 방임으로, 방임의 실패는 다시 통제 강화로 되돌아간다.

둘째, 권한과 책임을 함께 설계한다. 권한은 쓸 수 있는 자원의 크기이고, 책임은 감당해야 할 결과의 수준이다. 권한만 주면 결과가 흩어지고, 책임만 지우면 주체성이 위축된다. 책임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관심의 범위도 함께 넓어진다. 부품 단위의 원가로 평가받는 조직과 제품 전체의 수익으로 평가받는 조직은 같은 사람이 다르게 행동한다.

셋째, 목적으로 울타리를 만든다. 조직이 할 일은 목적이라는 마당을 만들고 그 안에서 전문가가 뛰어놀게 하는 것이다. 행동을 하나하나 지정하는 대신 방향을 공유하고, 책임이라는 피드백이 돌아오게 하면 구성원은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가 된다.

넷째, 개인 성과와 팀 성과를 병렬로 인정한다. 어느 하나만 평가하면 다른 하나는 조직 안에서 사라진다. 두 축을 함께 인정하는 설계가 있어야 경쟁과 협업이 같은 사람 안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관련 개념

문화 속의 흔적


  1.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 / 구본형, 《코리아니티》. ↩︎
  2. 이누미야 요시유키,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