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융합하는 능력

서로 다른 것을 그대로 두기보다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식이 한국 문화 곳곳에서 관찰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융합은 여러 가지를 뭉개어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각각이 자기 성질을 유지한 채 함께 있어 새로운 것이 되는 방식이다. 이 구분이 이 특성의 전부이며, 동시에 모순 경영의 핵심과 정확히 겹친다. 이 특성은 한국성의 네 가지 축 가운데 하나이며, 조직의 층위에서는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모순과 만난다.

비빔밥이 보여주는 구분

재료를 섞는 음식은 어느 문화에나 있다. 그러니 비빔밥이 특별하다는 주장에는 반론이 따라붙는다. 차이는 섞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섞인 뒤에 재료가 어떤 상태로 남는가에 있다.

서양 요리에서 재료가 섞이는 경우, 대개 재료는 완성된 하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한 부속 요소가 된다. 스튜에 들어간 당근은 당근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스튜의 일부다.

비빔밥은 다르다. 나물은 나물의 식감을, 고기는 고기의 맛을 유지한 채 한 그릇 안에 있다. 고추장은 이들을 하나로 녹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를 살린 채 연결한다. 재료의 독립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의 정의가 나온다. 융합은 독립된 것들의 어울림이지, 독립적이지 않은 것들의 섞임이 아니다.

융합은 절충의 반대말이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한가. 조직에서 상반된 두 요구를 마주했을 때 가장 흔한 대응이 절충이기 때문이다.

절충은 양쪽을 절반씩 반영한다. 변화도 아니고 안정도 아닌 조직 개편, 자율도 아니고 통제도 아닌 제도가 그렇게 나온다. 겉으로는 균형처럼 보이고 갈등 비용도 줄어든다. 그러나 양쪽의 이점을 모두 잃는다.

모순 경영이 말하는 것은 두 요소를 절반씩 섞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온전히 살리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융합은 절충의 반대말에 가깝다.

한국 조직의 적당히라는 관행이 여기에 걸린다.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한 모양새를 만드는 방식은, 두 극의 긴장이 만들어 낼 에너지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어디까지 융합해 왔는가

종교. 기독교, 불교, 유교가 각각 자기 영역을 구축한 채 큰 충돌 없이 공존해 왔다. 여러 종교가 한 사회 안에서 이 정도로 안정적으로 병존하는 사례는 드물다. 다만 단서가 필요하다. 이 공존을 각 종교의 현세 기복적 성격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는 남지만, 관용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웹툰. 웹과 만화의 결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중요한 것은 두 단어를 붙였다는 점이 아니라, 제작 과정과 결제 방식까지 새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주 단위로 갱신되는 연재, PC가 아니라 세로 스크롤에 맞춘 화면. 작가와 독자와 플랫폼이 함께 바뀌어야 성립하는 전환이었다. 기존의 것을 합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만든 것이다.

기술은 융합하지만 사람은 아직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표가 있다.

글로벌 창의성 지수에서 한국은 기술 부문 최상위권에 오르는 반면, 재능과 관용 부문에서는 크게 뒤처진다. 2015년 조사에서 종합 31위였으나, 기술 1위·재능 50위·관용 70위라는 극단적 불균형을 보였다.

이 수치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기술과 지식과 양식을 융합하는 데는 능하지만, 사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서툴다. 융합의 대상이 사물과 형식에 머물러 있고 사람으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 특성의 한계이자, 이 특성이 앞으로 어디에서 시험받을지를 알려 준다. 서로 다른 국적과 배경과 전공을 가진 사람이 한 조직에서 각자의 성질을 유지한 채 함께 일하는 것 — 비빔밥의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이 남아 있다.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모순과 만나는 지점

사회적 성과와 재무적 성과의 모순에서 이 특성이 다루는 다양성은 기술이나 장르가 아니라 가치다.

한국인을 설명하는 특성 목록에는 선비정신과 물질주의가 나란히 들어 있다. 도리와 실리, 명분과 이익이 큰 충돌 없이 공존해 온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를 서로를 배신하는 것으로 느끼지 않는 태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태도가 경영으로 옮겨지면, 사회적 성과를 홍보 수단이나 비용으로 다루지 않고 재무적 성과와 서로를 강화하는 짝으로 설계하는 방향이 된다. 둘을 절반씩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키우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다만 이것은 시작점의 차이일 뿐이다. 두 가치가 충돌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두 가치가 서로를 강화하도록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특성의 그림자

융합의 그림자는 융합이 실패한 자리가 아니라, 융합인 척하거나 어중간하게 멈춘 자리에서 나타난다.

위장. 대외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내세우고 내부적으로는 재무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두 가치를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위장하는 것이다. 좋은 의도로 나쁜 의도를 씻어 낸다는 뜻에서 워싱이라 불린다. 융합의 언어를 쓸수록 검증은 더 어려워진다.

절충. 앞서 다룬 대로다. 겉모습이 융합과 비슷해서 더 위험하다. 조직 안에서 융합을 시도하다가 조율 과정에서 절충에 머무는 경우가 실제로 가장 흔하다.

동질성으로의 회귀. 다양성을 비효율과 시행착오와 지연으로 보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단일 목표를 향해 달리던 시기의 유산이다. 그 시기에 다양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그 기억은 조직의 관행 안에 오래 남는다.

조건으로 전환하기

첫째, 절충인지 융합인지 물을 기준을 만든다.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양쪽이 각자의 성질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두 요구를 반영한 결과물에서 어느 쪽도 원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융합이 아니라 절충이다. 이 질문을 의사결정 과정에 명시적으로 넣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걸러진다.

둘째, 두 가치의 관계를 지배구조와 제도에 넣는다. 선언은 사람이 바뀌면 사라진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는 리더의 의지가 아니라 소유 구조, 의사결정 권한, 평가 지표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지속된다.

셋째, 융합의 대상을 사람으로 넓힌다. 기술과 형식의 융합에서 얻은 감각이 사람의 다양성으로 자동 확장되지는 않는다. 법적 토대와 별개로 조직이 만들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배경의 구성원이 동화되지 않고도 기여할 수 있는 조건이다. 적응을 요구하는 방식은 비빔밥이 아니라 스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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